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아야 소피아 (문단 편집) === 설계, 구조와 재료, 보수 === [[파일:external/islamic-arts.org/5836611204_9d317f3230_o.jpg]] [[파일:external/s-media-cache-ak0.pinimg.com/ac19ad96f433f4e83d9c779bc7a777a3.jpg]] 동로마 건축의 전성기의 정수라 할 수 있을 정도로 크고 웅장하며 또한 대단히 빠르게 완공한 역사적 건물이다. 하지만 기존 건축물을 뛰어넘는 규모와 공사기간을 맞추기 위한 무리한 공사와 실패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는 건물이기도 하다. [[파일:external/shellbuckling.com/pantheonsophia.png]] 왼쪽은 로마의 판테온, 오른쪽은 537년 당시 하기아 소피아 성당. 기본 구조는 "막센티우스 [[바실리카]]"와 같은 석조 [[볼트]] 천장을 활용한 광대한 면적의 건물과 "[[판테온]]"과 같은 돔형 천장을 가진 건물의 조합을 시도한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당시로서는 새로운 형태의 건물이었다. 물리학자인 이시도로스와 수학자인 안시미오스가 설계한 것도 특징적인 부분인데, 당시의 건축물은 일반적으로 장인 집단의 축적된 경험적 지식을 기반으로 설계되던 것과는 사뭇 다른 부분이다. 물리와 수학 이론을 동원하여 건축물의 구조를 설계하려고 했던 것은 오늘날의 건축 공학으로 이어지는 초기 단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유스티니아누스는 전례없이 큰 건축물을 원했고, 전례가 없다는 것은 기존 장인들의 경험적인 지식을 뛰어넘는 것이었기에 새로운 방법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러나 정확한 물리적인 계산이 불가능했던 당시로써는 한계가 명확하여 아야 소피아의 구조는 불완전했고, 완공되기 전부터 거대한 돔과 단기간의 완공을 위한 부실 공사 때문에 붕괴될 위험이 많았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thesmalljourney.files.wordpress.com/pendentive1.gif|width=100%]]}}}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depts.washington.edu/hagia_sophia__pendentive.jpg|width=100%]]}}} || 아야 소피아가 가진 문제의 핵심은 거대한 반구형의 [[돔]] 무게를 버티는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돔은 가볍고 내구성이 좋은 건축자재들을 활용해 만들어졌지만, 높이 56m에 직경 31m가 넘는 거대한 크기로 인해 엄청난 무게를 가지고 있었다. 이를 지지하기는 돔을 받쳐주던 30.5m 폭의 대형 [[아치]] 4개로도 불가능했다. 그렇기에 [[볼트]]의 일종인 펜덴티브(삼각궁륭)를 사용해 대원개를 형성한 결과, 펜덴티브가 각 아치 사이의 틈을 메꾸어 돔의 무게로 인해 옆으로 벌어지려는 아치의 수평추력을 완화시켰다. 그러나 돔이 계속해서 아치와 그 밑의 기둥을 짓눌러 기둥이 바깥으로 쓰러지려고 했기 때문에 결국 공사 와중에 붕괴 위기가 오자 돔을 지탱하는 중앙 기둥들의 바깥 부분인 회중석 부분에 좌·우에 4개의 대형 버팀목을 만들고, 한 쌍의 버팀목을 연결시켜 위·아래로 아치형의 [[회랑]]들을 개축해 기둥이 밀려나는 것을 버티게 하였다. 이런 급한 땜질에도 불구하고 회랑들의 가장 윗쪽 아치에 균열과 함몰, 뒤틀림이 발생했는데, 이는 아직도 버티는 힘이 모자라다는 증거였다. 각 버팀목마다 4군데의 아치형 회랑을 너무 크게 뚫어서 버팀목이 약해진 것이었다. 만약 회랑의 아치를 좀 더 작게 만들거나 메꿔버렸다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결국 버팀목 위에 기둥과 아치를 더 세워 힘을 보태고, 가로 지지대를 추가한 후 가장 위에 있는 아치를 벽돌로 겉을 메꿔서 좁게 만들었다. 그러나 이미 진행된 상단부의 뒤틀림을 고칠 수는 없어 지금도 이 공간에 가면 천장이 뒤틀려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중앙 기둥들이 밀려나게 되자 당연히 돔이 올라갈 공간 역시 정사각형이 아니라 좌우로 길쭉한 직사각형 모양이 되게 되었다. 하지만 시간이 부족했던 건축가들은 완전한 원형 돔은 포기하고, 대신 타원형으로 돔을 완성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구조적으로 봤을 때 타원형 돔은 완전한 원형 돔보다 비균일하게 무게를 전달하므로 다소 불안정했다. 아무튼 이런 과정을 거쳐서 성당은 완공될 수 있었지만, 이게 끝이 아니었다(...). 성당이 건설될 때부터 이시도로스와 안시미오스는 이 지역이 지진대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기둥이 허용된 것 이상으로 이동하는 것을 방지하는 턱을 만드고 주두와 기둥, 기둥과 주초 사이에 납판[* 이것은 기둥과 천장 간의 유연성을 주어서 지진이 일어나도 건물이 붕괴되지 않게 하는 역할을 했고 이후 돔의 무게로 인하여 천장과 바닥의 어긋나는 등 건물 자체가 변형이 되어가는 과정에도 기둥 등의 구조물이 파괴되지 않게 하는 작용을 하게 된다.]을 넣는 등 어느 정도 내진 설계를 했다. [[파일:column-leaning-from-earthquake-682x1024.jpg]] 그러나 완공 이후 20년이 지나기도 전에 발생한 기록적인 지진으로 인해 558년에 돔이 붕괴되고 만다. 안시미오스와 이시도로스는 이미 사망하였기에 이시도로스의 조카인 젊은 이시도로스가 공사를 맡게 되었다. 새로운 이시도로스는 이 성당의 돔을 연구한 뒤 돔의 결함을 발견하게 된다. 기존의 돔은 채광을 위해 짧은 기둥들을 빙 둘러 원형으로 세운 드럼인 스트롱길롱을 놓은 뒤 그 위에 돔을 올렸는데, 이는 지진에 매우 취약하였다. 그래서 젊은 이시도로스는 기둥을 사용한 스트롱길롱 대신 훨씬 두꺼운 벽들로 바꾸고 돔의 위치를 6.25m 정도 낮춰 벽에 좀 더 안정되게 지지되도록 바꾸었다. 또, 젊은 이시도로스는 전체 공사기간과 비교하면 매우 긴 4년이란 시간 동안 돔을 보수할 수 있어 돔에 쓰인 회반죽 등이 마른 후에 건축용 지지대를 철거하는 등 안정된 방법을 쓸 수 있었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farm5.static.flickr.com/5047298305_a2873afa3f.jpg|width=100%]]}}} || || 외벽에 추가된 버팀목 || 그러나 이게 끝이 아니었다(...). 이후로도 지진 등으로 인해 돔과 성당은 부분적으로 계속 파손되었고, 수백년이 흐르면서 돔의 무게 때문에 점점 기둥들이 바깥쪽으로 기우는 것이 보이게 되었다. 9세기에 이르러서는 건물 외부에 서유럽의 [[고딕]] 성당에서나 볼 수 있는 버트레스와 비슷한 버팀목을 추가하기 시작했고, 훗날 [[오스만 제국]] 시절에도 비슷한 땜질을 해야 했다. 그래서 지금도 기울어져 있는 기둥들이 보인다. 아야 소피아에서 설계상의 문제가 계속해서 터져나오고, 세월의 풍파를 맞아오는 와중에도 지금까지 무너지지 않고 유지가 가능했던 것은 자재의 품질 덕도 있다. 먼저 벽돌의 경우 로도스 섬의 점토로 만들어진 것인데 물에 던져도 뜰 정도로 가볍고 미세한 균열같은 것들은 벽돌의 탄산염 등의 물질에 의해 시간이 지나면서 스스로 메워진다고 한다. 또 로마의 시멘트와 콘크리트 기술이 쇠퇴한 중세 유럽과는 달리, 포졸란 시멘트와 콘크리트 기술이 이어져서 이를 성당을 개축할 때 사용하였다. 포졸란 시멘트는 지중해 서부의 채석장에서 발견되는 화산재인 포졸라나와 석회 등을 사용하여 만든 시멘트로 인장강도가 매우 우수하다.[* 1993년도 논문 Materials analysis of the Masonry of the Hagia Sophia Basilica, Istanbul 참고] 하지만 최대 강도에 이를 때까지 소요되는 시간이 길어서[* 거의 연 단위로 현태의 포틀랜드 시멘트(100-150일)에 비해 꽤 긴 편.] 단기간에 공사가 이루어졌다면 위에 언급된 뒤틀림 문제에 꽤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1993년도 논문 Materials analysis of the Masonry of the Hagia Sophia Basilica, Istanbul 참고] 포졸란 시멘트 기술은 계속 전승되어서 오스만 제국까지 이어졌다.[* 오스만 제국 때에는 포졸란 모르타르를 Khorosany mortar라고 불렀다는 설명. 1993년도 논문 Materials analysis of the Masonry of the Hagia Sophia Basilica, Istanbul 참고][* 오스만 제국 시기 댐을 지을 때 포졸란 시멘트를 사용했다는 설명. 책 Hydraulics of Dams and Reservoirs, p.15 [[http://books.google.co.kr/books?id=NqzZdytUz3gC&pg=PA15&dq=pozzolan+cement+in+ottoman+era&hl=en&sa=X&ei=hbUyVLSnGpPM8gWBvIGICg&ved=0CB8Q6AEwAA#v=onepage&q=pozzolan%20cement%20in%20ottoman%20era&f=false|링크]]] 물론 21세기의 [[철(원소)|철]]제 [[H빔]]을 넣어 만든 공법으로 지어진 건물에 비해서는 넘사벽으로 허약한 건물이긴 하나 그래도 저게 건축될 당시 기준으로서는 최고로 견고한 재료를 사용했다고 볼 수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